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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한국 독립군의 첫 승리

by 작도쓰 2023.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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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쟁취한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를 영화화했다.

"독립군 수는 셀 수가 없어. 왠지 알아?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내일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


봉오동 전투 // The Battle Roar to Vitory // 2019

봉오동 전투에서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전설적인 독립군 황해철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

 

1.  봉오동 전투, 한국 독립군의 첫 승리

영화 <봉오동 전투>는 유해진, 류준열 주연으로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다룬 기존 영화와는 달리 한국 독립군의 통쾌한 승리를 이뤄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실화이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 독립군 연합부대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진다. 일본은 한국 독립군을 모조리 없애버리기 위해 봉오동 일대에 최신 무기로 무장한 월격추격대를 보내고 독립군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활용하기로 한다. 

 

봉오동 전투의 주역이자 지휘관인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농민, 광대 등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총을 들고 나섰다. 훈련을 받은 군인 외에도 독립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수많은 민초들이 있었다. 일본의 잔혹한 만행 속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광복이라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똑똑한 지식인, 정규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 이뤄낸 결과가 아닌 우리 가족, 친구들이 독립을 위해 다같이 총과 칼을 들고 전투에 임한 덕분이다.

"나라 뺏긴 설움이 우리를 볻받치게 만들어서 쟁기 던지고 여기 모여 군인이 되었다"

 

어제는 마적이었지만 오늘은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독립군이 된 황해철(유해진).

어린 시절 황해철과 동생은 일본 첩보대를 중국으로 안내하고 첩보대 대장은 그들에게 보따리를 건넨다. 동생은 보따리에서 먹을 것을 꺼내  한입 먹다 폭탄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폭탄을 안고 죽는다. 동생의 죽음에 원한이 맺힌 황해철은 10년 뒤 대한독립군의 일원이 되었다. 

 

"잘 먹고 잘 봐. 꼭 살아서 가서 너네 죗값 꼭 지어. 그리고 네가 본 걸 다 말하고 들어주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댈로 알려. 너희가 어떤 짓을 했는지"

춘희(이재인)는 동생이 일본군에게 잔혹하게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후 춘희는 독립군에 합류하고 포로가 된 일본군 어린 소년 유키오가 목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직접 도와준다. 그러면서 일본군이 무고한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광경을 직접 보면서 잘못을 깨달으라고 한다. 유키오는 독립군과 함께 생활하면 일본의 야만적인 만행을 직접 눈으로 본 후 심적인 변화를 겪는다. 포로에서 풀려난 유키오는 이후 일본군 추격대장 앞에서 자신이 목격한 조선인 학살의 부당함에 대해 지적하며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본이야말로 열등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전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류준열)

일본군을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하는 미끼 역할을 한다.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뚫고 주변에 매복되어 있는 지형으로 일본군을 유인하기 위해 생사를 넘나들며 최전선에서 일본군에 싸운다. 

"너네 나와바리라는 말 좋아하지. 여긴 내 나와바리야"

 

2. 영화 결말

일본군 유인 작전에 성공하고 황해철과 일본 추격대장 야스카와의 치열한 격투 끝에 황해철은 야스카와를 죽이게 된다. 총과 칼을 겨눈 독립군들에게 일본군들은 결국 무릎을 꿇고 항복한다. 아라요시는 도망치다 홍범도를 만나며 다른 일본군들과 함께 포로가 되었고 이후 독립군들은 홍범도가 유골을 뿌리는 것을 보며 다음 목적지는 청산리라는 것을 밝히며 영화는 끝이 난다. 

 

 

3. 잊지 말아야 하는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

원신연 감독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조선민을 학살하는 그 자체의 장면은 영화에 1/100도 다루지 않았을 정도로 너무 잔인했다"라고 전한다. 

 

일본의 무차별적 학살과 식민 정책이 극에 달하자 우리 민족은 대동단결선언, 2.8 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아 1919년 3.1일 만세운동을 펼치게 된다.  이 만세 운동이 국외로 확산되면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조직을 홍범도 장군이 한 곳으로 모으고 민중들까지 힘을 합쳐 독립군이 탄생되었다. 그들은 낮에는 낫과 곡괭이를 들고 농사를 짓고 밤에는 죽창과 총칼을 들고 군사훈련을 하였다. 

 

일본은 우리 독립군이 일제 관공서를 파괴했다는 이유로 중국 만주로 쳐들어 오고 화풀이로 조선인 마을을 습격하여 죄 없는 민간인들을 무참히 학살한다. 또한 월강추격대를 만들어 독립군이 주둔하고 있는 봉오동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독립군과 싸우게 된 것이 봉오동 전투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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